사연공모 우수작새우깡과 함께 한 사연을 올려주세요!

짤그랑 할아버지

작성자

김원두(부산광역시 남구 당감3동)

등록일
2002.09.29
조회
2,749
우리 가게를 찾는 많은 손님들 중, 어머니께서 유난히 신경쓰셨던 손님은 '짤그랑 할아버지'였다. 그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두세 번 우리 가게에 들러 항상 라면 몇 개와 새우깡 한 봉지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. 셈에 서투신지 계산을 할 때도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 몇 장과 주머니 한가득 동전을 모두 털어놓았는데, 어머니께서는 언제나 거스름돈을 꼼꼼히 챙겨서 웃으며 할아버지의 거칠고 작은 두 손에 다시 쥐어드렸다. 그러면 할아버지는 불편한 다리를 쩔뚝거리며 주머니에서 나는 '짤그랑 짤그랑' 동전소리와 함께 표정 없이 가게문을 나서곤 하였다.
중학교를 졸업하고 시작된 그해 겨울에도 '짤그랑 할아버지'는 언제나 라면과 새우깡 한 봉지를 사러 오셨다. 단지 달라진 것은 할아버지의 걸음이 더욱 불편해 보인다는 것과, 계산할 때 조금씩 모자라기 시작하는 동전들이었다. 난 어머니께서 할아버지께 언제나 친절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 돈이 좀 모자라는 날에도 약간의 거스름돈까지 챙겨서 할아버지께 건네주었다. 하지만 난, 할아버지의 주머니가 조금씩 줄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, 나 역시 생활비 문제로 몰래 고민하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.
하루는 조심스럽게 '할아버지, 죄송하지만 돈이 조금 모자라거든요. 다음에는 조금 더 들고 오셔야겠네요.'라고 말해보았지만 할아버지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게 문을 서둘러 나가셨고 그 후에도 훨씬 줄어든 동전으로 라면 몇 개와 새우깡을 계산대에 올려놓았다. 그러던 어느 날, 난 어머니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 싶은 짧은 생각에 모진 마음을 먹고야 말았다. 짤그랑 할아버지가 모자라는 동전으로 라면과 새우깡을 계산대에 올려놓자, 난 '이 돈으로는 새우깡까지 살 수 없어요.'라고 말해버린 것이다. 짤그랑 할어버지는 약간 커진 듯한 눈으로 작은 신음소리를 내며 새우깡에 애써 손을 뻗어 보았지만 난 어느새 계산대 밑에 새우깡을 넣어버렸고 짤그랑 할아버지는 힘없는 표정으로 돌아서서 가게를 나가셨다. 짤그랑 할아버지의 주머니에선 더 이상 짤그랑 짤그랑 소리가 나지 않았고, 할아버지 역시 그 후로 우리 가게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. 그때 나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보아도 후회한들 할아버지가 언제나 입고 다니시던 빛 바랜 회색외투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.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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